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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무슨 도움을 주셨나요?”

이정욱 선교사

구름이 많이낀 문화 유산의 날(Heritage Day)이었습니다.  지난 두달간 부쿠칸예에 참석해온 두 청년이 제게 다가와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얼굴에 자랑스럽게 문양을 그려 넣고 걸어다니고 있었지만, 이 두친구는 실망한 표정입니다.  저희들이 이 마을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달라 합니다.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고 이야기하는 줄은 알았지만, 멈추지 않고 대화를 계속하였습니다.  “마을에 어떤 변화도 없나요?” 라고 묻자, “네, 지코나가 아주 많이 변했어요.  많이 행복해하고.  그런데 당신들은 마음만 돌보나요 아니면 재정적으로도 도와 주나요?”

지코나가 저희를 울며 찾아 왔었습니다.  세딸을 키우는 홀 어머니는 스트레스로 술을 많이 마신다 합니다.  친척 등 사람들이 그녀의 주민등을 자꾸 빼앗아 가서, 정부에서 주는 사회 보조금조차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남아공에서는 정부의 보조금에 의존도가 높아 주민증이 담보로 쓰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지코나가 주민증을 다시 발급 받더라도 상황이 좋아질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화중에 지코나가 한 이야기 중 이말이 마음에 깊이 다가왔습니다.  “저는 가진것이 없어서 아이들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제가 나쁜 어머니인줄 알아요.  아이들과 그냥 행복하게 살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코나, 당신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듣기에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좋은 어머니가 되는 것인 것 같은데 제가 맞나요?” 지코나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가 기적을 일으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해도, 당신의 아이들은 24시간 어머니가 필요합니다.  당신이 술에 취해 있다면 좋은 어머니가 될 수 없겠지요.  먼저 술을 끊으세요.  그리고 당신을 마음에 두지 않는 친척들은 잊으세요.  이제부터 저희가 가족이 되어드리고, 함께 해드리겠습니다.”  그녀가 희망에 찬 큰 웃음을 지으며 돌아간 것이 한달정도 전 입니다.

그동안 자메카와 길버트 부부가 음식을 챙겨주고, 주민증 재발급에 힘 써주셨습니다. 주키사니와 저는 지나갈 때마다 들리고, 지코나의 간난장이 딸아이가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에 음식도 가져다주며 같이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무시하고 빈정대며 상처를 줄때에 쓰러지지 않도록 격려해주며 감싸주었습니다.  이제는 정부에서 보조금도 나올 예정이며, 부쿠칸에 멤버들과 친구들도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어제, 지코나가 제게 와서 말했습니다.  “당신들에게 너무나 고마워요.  절대 저를 떠나지 마세요.  당신들 덕분에 사람들이 전에는 제게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볼수있게 해주셨어요.  아무 것도 없던 저를 이곳까지 끌어주셨으니, 이제부터 이끄시는 대로 어디든 따라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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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의 진정한 회개

이하영 선교사

아멘은 술에 취해 거리를 흥얼 거리며 걷다가 우리와 마주치게됬다.  술이 너무 취한 것 같아 난 눈을 일부러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는데, 이 남자는 가던길을 멈추고, “나 술취했어요. 알아요. 미안해요. 내일은 안마실꺼애요” 라고 하며 주위를 맴돈다. 가다가 돌아오고 가려다 돌아오고… 술 뒤에 숨겨진 아멘의 힘든 사정은 오직 하나님만 아실것이다.

예수님은 아멘을 위로 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당신은 목사이신가요? 교회가 어디에요? 나 예수를 알아요. 난 예수님을 사랑해요” 난 그 말을 들었을때 아멘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 우리에게 자기가 술먹은 것을 잘못했다며 용서 받기 위한 마음을 읽을수있었다. “내일 부큐가녜(교회 공동체)에 오세요. 지금은 안전히 집으로 가서 TV라도 보며 즐거운 토요일을 보내세요. 아멘은 이정욱선교사를 한쪽으로 끌어당기며 기도를 부탁했다. 고개를 푹숙이고 기도하는 아멘의 모습에서 진심으로 회계하는 마음을 한번더 느낄수있었다. 기도후 아멘은 기분이좋은지 자꾸 자기집으로 가자고 한다.

아멘은 예수님의 연민이 필요했다. 힘든일에 지쳐 술은 마셨지만 그게 잘한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도를 부탁한것 같다. 예수님은 아멘을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이 주시는 안식을 받기원했다. 이런 분들을 놓치지않고 전도할 수 있기를 바라며 아멘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 믿음의 길을 걸어 갈수있기를 기도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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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받을 자격

이하영 선교사

토요일아침에 Mbasa, Marius, Sanele, Aluncedo가 집으로 놀러 왔다. 인제는 너무 커버려서 머리를 올리고 쳐다보는게 재미있기도 하고 실감나지가 않는다.  이중 세남자아이는 예전 졸라마을 어린이 사역을 할 적에 얼굴을 많이 본 아이들인데 벌써 많은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때는 나보나 키도 작고 등치도 작은 아이들이 이렇게 벌써 커버리다니,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볼 세도 없이 너무 시간이 빨리 가버렸다.  주키사니의 아들 니나도 형들이 있어서 훨씬 재미있어 보인다.  집에 와 있어도 너무 어려서 아직 영어를 못하는지 나도 똑 같은 애기를 또 하고 또 하다 보면 그냥 “그래 재미있으면 됬지, 웃고있으니까 분명 행복한 거 맞지?” 라고 한국말로 한다 . 그런 날 보면서 깔깔거리는 모습이 너무 귀엽기만 하다.  이번 아이들의 방문에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 있다.  전에는 집으로 이렇게 아이들이 몰려들면 내 머리 속은 늘 복잡하기만 했다. 더 잘해줘야 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지금에서 곰곰 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이 아이들을 잘 몰랐기때문이다. 선교사로서 다가갈 때에 무언가를 주는 것이 가장 마음을 전달 하는 대에 좋다는 생각에 늘 나는 뭘 주기에 바빴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정욱 선교사는 늘 이 아이들을 사랑해주라고 했다. 그럼 난 “ 사랑하고 있잖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라고 대답을 했다. 그럼 그냥 잠잠히 있는 남편을 보면 뭔가 내가 보지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6년전 선교를 왔을 땐 내가 이 아이들을 보는 시선은 우월할 수밖에 없었다. 너 네들 너무 불쌍해.  내가 잘 해줄게.  내가 먹는 거 줄게. 내가 입을 거 줄게 하며 으스대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 아이들을 보는 나의 시각은 그곳이 시작일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제는 서로 함께 만날 때 이 아이들은 그저 음바싸가 되엇고, 마리우스가 되엇고, 알룬채도가 되엇으며, 난 이 아이들과 친구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겪으며 사는 내 삶과는 동떨어진 힘든 일들이 이 아이들과의 만남과 사교에 이질감의 방해요소가 되지 않았다.

IMG_0027이 아이들도 나처럼 그 누구처럼 관심이 필요하고, 맛있는 것 먹고 싶어하고, 사랑이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다.  얼마전에 론와보란 아이가 강간, 폭행죄로 감옥에 들어갔다는 애기를 듣고 슬펐다. 하지만 이 아이를 아는 나는 범죄자라는 생각보단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순간 만약 론와보가 우리 집을 방문한다면 내가 마음 편하게 반겨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 아이가 뛰어놀던 모습, 웃던 모습,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그 두려움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그 추억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할 따름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신 그 사랑에 십자가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사사로이 느끼는 차이는 선교사로서 넘어 서야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존중 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  그것은 몰론 죄를 지었을 때 그것을 용서받고 새로운 사람으로 살수 있다는 자격도 포함된다.  예수님은 그 가치를 자기의 목숨을 바쳐 보여주셨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나와 아보나와 남편과 그리고 이 남자아이들은 똑 같은 줄에 서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눈에는 우리는 동등하기 때문이다.  더 낳은 것도 부족한 것도 없는 동등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동등 하다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입던 마시던, 소유하던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데는 똑 같은 자격과 가치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보나에게 사주신 텐트를 가지고 놀라고 줬을 때 한번도해본적이 없다면서도5분도 안돼서 뚝딱뚝딱 만들어버렸다. 이 아이들도 기회가 된다면 정말 잘 할 수 있는 게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터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고 고맙고 기특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웃을 때는 정말 쓰다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줄 수밖에 없다. 너희들도 나랑 똑 같은 사람이고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언제 예수님께서 이 아이들 마음에 들어가실지는 나도 모르겠다.  힘든 상황에 예수님이 필요할 때 선교사로써 옆에 있어 줄 수 있다
면 그때는 이 아이들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면 천국을 향해 꿈꾸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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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라를 떠나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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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 선교사

이 사진은 제가 2013년에 찍은 사진입니다.  론와보는 당시에 12살 이였습니다.  3년후 론와보는 컴퓨터를 훔치러가 한남자를 칼로찌르고, 20대 여인을 집단 강간한 8명의 청소년중의 한명 이였습니다.  크라이폰틴에 있는 법정심리 전의 수감자들이 있는 구류소에서 방문중에 이 아이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2년을 졸라지역 첫 청소년그룹과 함께 사역을 하며 깊은 관계를 만들다 보니, 그 12 명중에 끼지 못한 다른 어린 아이들도 그룹에 함께하기를 고대했습니다.  아직까지도 몇몇 아이들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고요.  파파마는 저희 딸이 되었고, 롤로, 아나티, 셈, 그리고 시노욜로는 올리아에 함께 종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예수님께 존귀한 존재입니다.’ 캠패인이 바빠지고 있었던 시기여서 다른 사역을 확장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지요.

저희는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3년을 졸라에서 사역한것이 튼튼한 바탕이 되었고, 이 나라가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이해할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하지만 첫 6개월 동안 청소년 그룹 아이들중 둘이 강간을 당하고, 어린 아이들이 거의 매달 이다시피 강간을 당하는 것을 보며, 이것은 이해를 할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라, 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안다는 사람으로써 가만있을 수 없는 윤리적인 책임 이였습니다.

그래서 졸라 마을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팀을 주시어, 다음 3년을 전국의 여러곳을 다니며, 칼리차등 여러지역에 열정을 쏟아 부었습니다.  어린이 행진을 더 깊게 발전시키고, 선한자의 모임을 시작하였고, 시골 지역에도 캠패인을 확장시켜 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을 직접 토착화된 모습으로 실천할수 있는 부쿠칸예라는 지역 공동체 모임도 시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인도 하셨고, 이 사람들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들을 향한 사랑도 보여주셨습니다.

론와보는 그때 두번째 그룹을 시작하려던 아이중 하나였습니다.  그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가지고는 졸라를 떠나야 했습니다.  구류소 면회실에 앉아있는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많이 변하지 않은 모습입니다.  눈빛만이 조금 희미해 보이는것 외에는요.  사건에 대해서 이것 저것 물어보는데, 같이 앉아 계시던 론와보 어머님이 말씀하십니다.  “선교사님이 졸라를 떠나지 않았으면, 론와보가 이러지 않았을텐데요.”  고개를 돌려 론와보에게 물었습니다.  그랬겠냐고.  제게 머뭇거리며 확신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때주신 성경책 아직 가지고 있어요.”  오는 7월에 론와보는 16세가 됩니다.

옵티머스에서 실시한 최근의 연구결과에는 지난해에만 15~ 17세 청소년들에게 일어난 성폭력은 351,214건에 이른다 합니다.  론와보는 반대 그룹에 속합니다.  그 피해자들에게는 아직은 대답할수 없지만,  이 아이와 저희 관계는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것이 확인이 되야되고 해결 되야될 부분이 많이 남아있지만, 저희는 함께 이아이의 삶을 바로잡고, 졸라지역에 다시 돌아올수 있도록 부쿠칸예 공동체와 함께 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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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칸예 사역

주키사니 은잘라

매주 일요일마다 졸라 지역에서 첫 부쿠칸예 공동체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 모임은 졸라 지역에서 일어나는 강간, 강도, 청소년 문제 등 사회문제를 사랑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서로 나누고 의논하는 공동체 모임인데, 그 외에도 마을에서 일어나는 힘든 일들을 서로 나누고 해결점을 함께 찾아 나갑니다. 이모임을 일곱 명으로 시작되었는데, 서로를 믿고 의지 하기에 적정한 수 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돌보며 아낄 수 있도록 도와 줍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강간, 강도, 청소년문제들은 쉬운 문제들은 아닙니다.

하루는 사람들을 기다리다가 공동체의 한 여자분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우지바 운자니” 마음이 어떠신가요? 라고 물었을 때 울먹이며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버지는 만난 적이 없고 어머니도 자기를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버려둔 체 떠나버렸다 합니다. 힘든 상황 속에 삶을 꾸려나가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부담이 되진 않고 싶었던 것이 그분들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이유였답니다. 다섯 살 된 딸은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남겨두고 케이프 타운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났고 본인의 뜻을 이해 못하신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고 했습니다.

케이프 타운에 도착한 후 친구가 자기를 거두어 주었고, 매주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돈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마음을 열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홀로 서있는 것도 힘든 상황에 할머니와 할아버지와의 단절 상황이 힘들기만 하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남에게 털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친구조차도 본인에 상황이나 아픔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않아, 애기하는 것조차 포기해버리고 자기 스스로도 힘든 마음을 어떻게 추스를지 몰라 웅크려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믿을수없고 마음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Image 2016-06-22 at 12.53 AM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끄시어 이 만남을 허락해주신 것은 너무나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이분 뿐이 아니라 이런 상황에 있는 많은 분들을 도울 수 있게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모임이 시작된 지 두주가 지났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와서 더 많은 사람들이 부쿠칸예 공동체 모임에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졸라 지역으로 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눕니다. 하루는 한집을 방문했습니다. 이집에 남자아이가 동네에서 형편없이 군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 소문의 주인공은 씨암탄다(사랑받는)입니다. 그 아이의 이름의 뜻과는 다르게 이 현실의 이 아이는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양 발을 구워 팔고 그의 양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을 한답니다. 돈 안주면 어머니를 때리고 욕을 한다는 아이라고 말을 했더니, 이정욱 선교님께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 몸을 낮추어 이렇게 물어봅니다. “시얌탄다, 너 어머니에게 화났니?” 아이는 “네” 라 고 대답합니다. 왜냐고 물어보자 대답하기를, “우리 엄마는 절 때려요. 엄마 아빠가 날 때리는게 너무 무서워요” 난 이 말을 들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마도 이 아이는 나보다도 더 마음이 아팠을 겁니다. 하지만 난 편안해지는 그의 얼굴표정을 볼 수 있었고 차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 아버지도 엄마를 때리고 본인도 함께 두들겨 맞는다고 합니다. 씨암탄다는 비슷한 행동을 친구들에게 합니다. 때리고 차고 무지막지인 모습을 본 마을사람들은 학대에 인해 힘들어IMG_0581 하는 아이를 정신 이상이 있는 아이라고 합니다. 그후 매일같이 방가 후 이 아이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부쿠칸예 멤버들도 돌아가며 아이에게 관심을 보이고 도와 주고 했습니다. 저도 숙제도 도와주고 이 아이가 좋아하는 건 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는 것이 싫다 고했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맞는 것도 싫다고 했습니다. 학교도 가기 싫다고 하고, 선생님에게 맞는 것도 싫다고 했다. 아이들은 소풍도 가지못하는 자기를 늘 놀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담임선생님을 시노욜로와 함께 만나보러 갔습니다. 학교를 찾아가니 그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셨다 합니다. 새로 오신 선생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의논했습니다. 선생님은 씨암탄다가 학교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공부를 끝 낼 때까지 옆에서 지켜보고 있어야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또 한주가 지났습니다. 이남자아이는 요즘 부모님에게 들 맞는다고 했습니다. 말도 잘 듣고 행동도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합니다. 상으로 손수 이발도 해주었습니다.

다음 부쿠칸예 모임에서 씨암탄다에 대해서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아이가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자기들을 보면 도망가던 아이가 스스로 와서 인사를 합니다. 전에는 누군가 부르면 자기를 혼내거나 때릴까 라는 생각에 자기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서 멀리 도망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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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의 저녁 파티

이정욱 선교사

저와 처음 만났을 때에 션은 망연자실한 상태 였습니다. 남아공에서 선교사로 섬기겠다 던 꿈은 처음 몇달안에 희망보다는 실망이 되어버렸고, 많은 상처와 외로움에 지쳐있었습니다. 차근차근 션을 알아가며, 그의 삶을 회복하고 함께 사랑할수 있는 공동체를 찾는데 노력하였습니다.

지난 몇달동한 주님께서는 션에게 많은 축복을 선사하셔서, 지금은 그를 믿고 사랑해주는 공동체도 주시고, 미비하지만 소중한 사역을 많이 선사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주방장의 공부를 마친 션의 재능을 살릴수 있는 기회도 주셔서, 남아공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도 일하고 있습니다.

그가 선교사로써 초기에 경험한 슬픔과 분개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주님께서 아이디어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션의 저녁파티”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주 저희는 새로운 지역을 찾아가 무작위로 한집을 방문합니다.  그리곤 그집에 사는 가족 명단을 받고, 몇일후에 다시돌아가 그 가족에게 저녁을 대접합니다. 규칙은 두가지인데, 저녁대접하는 날 명단에 없는 다른 사람들이 있거나, 술을 먹은 사람이 있으면 저녁은 취소됩니다. 저희들의 믿음이나 사역을 나누지 않고, 그들이 가족으로써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말다툼이나 가족간의 질책 방지 등 대화 내용만을 조심스레 안내합니다. 아이도 어른도 가족으로써 함께 좋은 시간을 가질수 있게요.

둘째주에 찾아간 집이 토바니의 집입니다. 션이 준비한 메뉴는 스파케티 볼로네이스와 치즈케익 디저트입니다. 거실에 있는 소파도 치우고, 다들 앉을수 있는 접는 테이블과 9개의 의자를 가져가 설치하고 식탁보도 폼나게 깔았습니다. 하지만 처음 방문때는 남자 셋, 여자 셋 그리고 아이들 셋이라 하였는데, 오늘은 여IMG_0511 copy자는 둘 뿐이 없었고, 남자가 4명 이였습니다. 그래서, 저녁을 취소하려 했는데, 24살 먹은 한 남자가 심신 장애자인 것을 보았습니다. 이름은 토바니 였고, 장애자 이기에 가족들이 남자로 취급하지 않는것 같았습니다.
다들 자리에 앉으며, 60세이신 어머니께서 가족을 소개 하십니다. 그녀는 9명의 가족을 HIV 상담원으로써 일하며 홀로 생활비를 벌고 있고, 30대에서 40대 되는 네명의 남자들과 딸은 일을 안한지 오래 됬다 했습니다. 이 설명을 근엄한 목소리로 하셨지만 씁슬한 마음이 담겨있었습니다. 남아공 빈민촌인 타운십에는 흔한, 가족 서로에게 화와 실망이 넘치고 희망이라곤 찾기힘든 그런 가정이였습니다. 더군다나, 정신적 장애자인 토바니와 어머니의 동생이신 48세이신 토바니의 아버지의 정상적이지많은 않은 행동을 보며 그 가정에 더해질 부담이 상상이 갔습니다.

션이 자신과 저녁 메뉴를 소개하고 풍성히 접시에 음식을 담기 시작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먹으며 식구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담소를 나누며, 웃음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토바니는 기분이 좋아졌는지 저를 끌어 안으며, “어디가? 어디가?”하고 코사어로 뭇기 시작했습니다. 전혀 말이 안되었지만, 가족들 전부가 그의 바보스러운 행동을 보며, 같이 깔깔 거리며 즐거워 합니다. 토바니는 행복해 하며, 디저트를 먹고 난후에도 그릇에 남겨둔 스파게티도 먹기 시작합니다. 그의 어리숙하고, 못난 행동을 보며 가족들은 또다시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이해를 했습니다. 주님께서 “션의 저녁파티를 통하여 무슨일을 하시는지요. 주님께서는 아픔과 한에 쌓인 이들에게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저희가 무작위로 찾아온 이 가정에는 저희들이 가져온 이 축복에 주권을 가질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구도 이저녁 테이블에서는 잘났거나 못나지않고 평등했습니다. 삶이 가져오는 서로에 대한 감정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평소에는 차려진 음식을 들고 각자 방으로 밖으로 흩어져 버린답니다. 대화도, 감사도 없이 적막으로요.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희망을 가질수 있는 세상에서의 자유함을 주셨습니다. 문제와 감정들을 넘어선 자신들의 모습과 가족의 모습을요. 부담과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서로를 온전히 기뻐할수 있는 자유를요.

아직도 투바니는 마지막 남은 스파게티를 먹고있고, 가족들은 그에게 웃음을 던지고 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투바니는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두들이며 션을 포옹합니다.  마치 가슴과 가슴을 맞대고 싶은것 처럼요.

다음주에는 새로운 가정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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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이정욱 선교사

집에 가는 길 주키사니의 얼굴은 잔뜩 찡그려져 있었습니다. 이혼한 부인이 4개월 만에 처음보는 아이들을 15분만 만나게 해줬습니다. 허탈하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르지요. 이 모든것이 주키사니가 좋은 직장을 버리고 예수님을 위해 인생을 바치겠다고 나설때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년 1월 제게 켐패인에 종사하고 싶어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했습니다. 올리아에 충분한 재정이 없는것을 알면서도 돈때문이 아니라며 고집을 피웠습니다. 이결정이 주키사니의 인생에 처음으로 자신만을 위해 처음으로 내린 결정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후 돈을 안벌어 온다는 이유로 주키사니의 부인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버리고, 부모님들은 주키사니를 집에서 쫓아냈습니다. 트렌스카이에서 4개월의 설문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지난 1월 갈곳이 없어진 주키사니는 저희집으로 이사를들어와 지금까지 같이 지네고 있습니다.

그의 허탈한 표정에 뭐라 위로해 줄 말이 없었는데, 차안에 몇분동안 말없이 앉아있다 그에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네 인생의 많은 부분이 (결혼, 아이들, 부모와의 관계) 네 의사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구나. 지금까지 그들이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 대강 짐작이 가네.”
저는 처음 주키사니를 ‘선한자의 모임’에서 만났는데, 이렇게 정직하고 착실한 사람은 처음이였습니다. 이제 보니, 주위사람들은 모두 주키사니가 직장에 돌아가 일을해 돈을 벌어오라고 부인은 떠나고, 아이들을 못만나게 하고, 집에서 쫓아네면서 압력을 가하고 있는 것이였습니다.
“남이 원하는 미래가 아니고 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미래가 뭐야?” 하고 물었습니다.
대답하기 원치 않던 주키사니가 오랜 생각후에 이야기합니다.
“난,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그런데 아이들을 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해야할지  몰르겠어요.”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아버지가 되고싶은 주키사니의 소망은 하나님의 마음에서도 많아 벗어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이일은 지난 2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주키사니 전부인의 마음을 움직이시어, 아들 니나를 이 주에 한번씩 같이 지낼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활짝열려있습니다. 토요일 아침에 데려온 니나와 주키사니는 오후내내 침대에 누워 서로를 바라보고 조잘조잘 이야기를 나누며 평온한 시간을 보네고있습니다.

비디오 밑에 부분에 있는 CC버튼을 누르시면 한글 자막이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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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쿠칸예 (일어나 빛네어라) 커뮤니티 그룹

쿠야사는 많은 범죄와 문제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래서 많은 비영리 단체와 선교사들이 일을 하러 왔지만 실망만을 안겨준체 포기하고 떠났습니다.  그레서인지 주민들은 사진에 찍히는 것 조차도 꺼려합니다.  저희들이 9월 아이들의 행진을 준비할 동안만 3건의 살인과 4건의 강간 그리고, 많은 사건들이 일었났습니다.

지역주민들이 그런 사건들을 접하는 시각과 해결방법은 ‘죽이거나 쫒아내라’ 였습니다.  하지만 행진을 준비하고 진행하며 저희들의 사랑과 긍휼로 해결점을 찾자는 메세지가 그들에게 깊이 감명을 주고 새겨지는 것을 보고, 이 지역 주민들과 한걸을 더 나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주민들 열 댓명 정도를 모아놓고 저희들의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함께, 이지역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점들을 사랑과 긍휼으로 해결을 해 나간다면 어떤일이 일어날까요?”  그리고 그들에게 도전했습니다.  어떤 문제 이던지 가져와서 해결해 보자고요.

즉각 그들은 미팅에서 말없이 앉아있던 알바이노(흰둥이) 부부를 가리킵니다.  그 부부는 알바이노 가족으로써 지역에서 격는 차별과 멸시에 대해 나누었고, 자기들은 그렇게 자랐으니 어쩔 수 없지만 자녀 셋이 그런 것들을 격으며 자라는 것이  마음이 많이 아프다고요.  동네 사람들은 알바이노 들은 죽지도 않는다는 루머를 퍼트리고, 아이들은 지나가며 돌맹이를 던지고 간다합니다.  저희들을 어찌 할 것이냐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주민들에게 간단히, “예수가 하신것처럼. 이 가족과 함께 하고 함께 서주실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모두 일어서서 그 가족들이 사는 판자집으로 향했습니다.  안에서 기도를 해주려고 하는데, 밖에서 아이들이 또 돌을 던집니다.  여럿이 나가 아이들을 혼네려 하는것을 말리고, 도망가려 하는 아이들을 불러모았습니다.  “얘들아 우리 행진했던것 기억하니?  그날 우리들이 너희들을 보호해주러 왔었지?  너희들도 이 아이들에게 똑같이 해줄수 있겠니?  이 아이들을 보해해줘.”  그리고는 3살짜리 알바이노 여자아이를 않고 겁나게 뽀뽀를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산불처럼 번저나갔고, 눈이부셔 고생하는 12살 장남 산딜레에게 사준 선글레스를 동네의 한 아이가 빼앗아 갔을때에는, 동네의 반정도의 주민들이 몰려들어 저희들이 어떻게 하나 구경을 왔습니다.  선글레스를 빼앗아간 아이를 동내사람들 앞에서 두둘겨 패려하는 어머니를 말린 음탄다조는 그 아이에게 산딜레가 알바이노이기 때문에 눈이 약해 필요해 사준것이라며 돌려줄수 있겠느냐고 부드럽게 물어보았습니다.

몇주 후 여러가지 일을 의논하며 해결하던 중 그들에게 우리 그룹이 하는 일을 상징할만한 이름을 지어 달라고 했습니다.  조용히 있던 산딜레의 아버지가 슬그머니 손을 드십니다.  그린곤 이 한마디를 조용히 하십니다.  “부쿠칸예 (일어나 빛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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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얼마나 내게 소중한지 알지?”

20150928_172731오랜 수소문 끝에 아나티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게 이러더군요. “왜 사람들은 3년전에 저지른 잘못(DVD player를 훔쳤습니다)하나로 날 정죄하고 아직까지 믿어주지 않나요? 그리고, 내 인생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이것저것 다해봤는데, 하나도 되는게 없어요.”

5년을 알고 지낸덕에 아나티의 삶과 그 가족들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아이가 학대를 받았는지,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컸는지 등등요. 이제는 19살에 11학년이지만 아직도 영어를 잘 하지 못합니다.

이 아이에게 한마디 던젔는데 그아이의 마음과 저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합니다.
“아나티, 사람들이 너를 문제아로 보고 싫어하는걸 알지만, 넌 내게는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알지?”
그 아이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영선교사와 저는 2016년에 6년간 운영해온 리아보나 몬테소리 유치원 (선생님 교육사역)에서 안식년을 가지고, 다른 사역들과 주님께서 저희에게 축복해주신 아나티같은 여러분들과 함께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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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자유? 트렌스카이로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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랠로가 허리에 오래된 스타킹으로 싸여진 무티 (전통적인 부적 같은 약)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짓꿎은 마음으로 렐로의 어머니가 는 데서 잡아당겨 보았습니다.  보통 아이를 병에서부터 지켜달라고 채우는 무티를 남이 만지면 부정 탄다 생각합니다.  렐로의 어머니는 금새 제 손을 낚아채고 무티를 셔츠 밑으로 숨기시며 하는 말이, “이건 우리의 문화예요.”하곤 씩 웃음을 짖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는 문화가 좀더 포괄적인 의미로 쓰여집니다.  자신들의 상식에서부터 잘잘못을 가리는 방법까지, 심지어는 종교적인 믿음과 의식도 포함이 됩니다.  가정 또는 지역의 평온함을 문화적인 상식이나 의식으로 지키기 위해서 법이나 도덕성도 뒷자리로 물러나지곤 합니다.  가끔은 그 문화가 이성적이지 않거나 불법일 경우도 있고, 그것에 불만을 같은 사람이 있다 할지라도, 문화적인 획일주의에 눌려버리곤 합니다.  이것이 이들이 자신이 가진 믿음을 지키고 살기가 힘든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일인 이역을 하게 되는데, 한 역할은 저희들과 같은 흑인이 아닌 사람들이거나, 외국인들을 대할 때 행동이나 생각의 기준이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동족이나 가족들을 대할 때 하는 기준입니다.  하지만, 한쪽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한쪽의 기준을 희생해야 할 때가 올 때는 보통 저희 같은 이방인/외국인들과의 관계를 희생하게 되지요.

‘저는 예수님께 소중해요’ 운동을 남아공의 강간문제를 해소하려 지난 4년을 일해오며, 선한 남성들을 동원하려 시작한 ‘선한자의 모임(RMA)’을 통해 3-400명에 달하는 정예 멤버들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아직도 이해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자리에서는 캠페인 매세지를 나누는 것을 힘들어 합니다.  마치 “전 예수님께 소중하고, 우리는 바뀌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하려면, 동성연예자가 폭탄선언을 할 정도의 각오와 용기가 필요합니다.  흑인 남성분들이, “나도 당신들의 이야기에 깊이 동의 합니다.  하지만 흑인들은 악한사람들이고, 이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1 불이 있었다면, 캠페인 자금걱정은 안 했을 것입니다.  – 흑인들 자신들간의 불신을 잘 나타내는 사설 – – To The South African Black Man: You Are Evil. Admit it.-  그래서 가장 큰 선한 자의 모임은 남아공에 선한 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선한 자들 자신에게 증명해주는 것이었고, 그들 대다수가 문화 획일주의에 눌려버리고 마는 것이 안타가 울 따름이지요.

이제 저의들이 한걸음 더 나아갈 때가 왔습니다.  지금까지 남성분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역이, 트렌스카이(남아공의 시골)의 문화적인 믿음과 의식이 문제가 되었던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는 도시는 돈을 버는 곳이고, 트렌스카이가 그들의 집입니다.  트렌스카이의 문화적 영향은 무시할 수 없고 남성들의 마음에서는 요동할 수 없는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상과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의 원천을 모르는 데서 옵니다.  대대로 지켜오던 그들의 문화의 가치는 희석되거나 잊혀졌습니다.  지난해부터 임비조 프로젝트를 통하여 아이들의 행진과 선한 자의 모임을 시작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문화와 사회적인 요소들의 다양성이 보였으나, 그 가치관을 젊은 세대들에게 깊이 있게 전달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세대간의 거리가 멀어질 수록 서로간의 불신이 커지는 것을 보았고, 다른 많은 문제들도 야기했습니다.  문화의 원천이 잊혀진 한 예로, 가장 중요한 문화로 여겨지는 할례 (성인식)도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창피 할 정도로 유치한 이야기도 포함해), 누구도 그 하나가 진정한 원천이라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좋지 안은 많은 사람들의 행동들이 타당한 이유나 이득도 없이 ‘문화’라고 여겨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하여, 저희 올리아의 재정담당인 주키사니가 트렌스카이에 설문조사를 하기위해 3개월간의 여행을 떠납니다.  주키사니는 작년 초에 선한자의 모임을 통해 협력하게 되었고, 금년 초부터 자신의 직장을 그만두고, 올리아에 합세하였습니다.  주키사니는 퀸스타운에서 시작하여 마운트 플레쳐까지 옮겨가며 주위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하며 설문조사를 실시할 예정입니다.  설문조사의 질문들은 젊은이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자신들 문화의 이해와 만족도를 측정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질문을 보시고 싶으시면 연락부탁 드립니다.  힘들고 위험한 여정이므로 주님이 함께하시고 이끄시기를 기도부탁 드립니다.  So they may have hope in Christ.